나는 존나 우울해서 죽고 싶을 때 이 영화를 봤다
영화는 주인공이 계속해서 차로 움직이면서 나의 죽음을 관조해줄 사람을 찾고 있지만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절하고 도망간다
차가 옆길로 새면서 노인과의 대화가 이어질 때 나는 설마, 하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설마 저런걸로 주인공을 회유하는건가, 저게 이 영화의 주제인가 싶어서 조마조마했다
하기야 이 영화는 90년대 이란영화다, 뭐 저때는 여기도 자살의 반대는 살자입니다 이런 시덥잖은 얘기나 하고 있던 시대니까
현자의 가르침 한마디보다는 병원가서 처방전이나 받아오는게 우울증의 해답이라는 것은 21세기의 관객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말 그 노인의 체리썰이 끝이었을까? 할 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의 배경은 졸라 삭막하다, 풀 몇포기 없이 모래만 날리는 곳이고 이미 주인공은 그 대화를 하기 전 공사판에서 모래바람이나 쳐맞고 온 상황이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노인이 구라를 치고 있는건 아닐까?
사막에서 우연히 체리나무를 발견하고 체리를 따먹었는다는 노인의 이 말이 감동실화가 아닌 주인공에게 어떤 단서를 심어주려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노인의 직업은 박제사다, 솔직히 말해서 죽은 생물을 이용하는 것이 박제사인데. 이 주인공이 노인의 박제감이 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여튼 이 노인은 영화에서 그렇게 입지전적인 인물은 아니고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하다. 실제로 길거리 할아버지 붙잡고 같은 얘기를 해도 이런 똑같은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비범한건 오히려 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노인을 다시 찾아가서 오히려 노인에게 새로운 단서를 건넨다. '내가 살아있을 수도 있으니 돌멩이를 던져달라'
노인에게도 던져진 똑같은 질문이라고 생각된다. 젊은 시절 노인이 맛 본 체리열매, 그리고 살아있을수도 있는 주인공
이 두가지는 실재할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는 것이다. 선택의 몫은 오롯이 본인이 지는 것
주인공은 결국 본인이 말한 어느 선까지는 실행하고 자리에 눕는다, 그것으로 영화는 종결된다
이 영화에서 노인의 말을 듣고 감동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의 소기 목적은 달성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뒤의 물음은 좀 더 고차원적인 질문이다
체리향기라는 영화가 단순히 교조적인 영화에 불과하다는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영화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을 수 있는 그 미약한 단서, 그것만으로 과연 인생을 움직일 수 있을까? 선택은 주인공이 하든 본인이 하든 자기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