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상장주식에 투자해 5000만원 이상 수익을 낸 개인투자자의 계좌 잔액이 10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개인 잔액의 13.5%를 차지한다. 5000만원 초과 국내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최고 27.5%의 세금을 물리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시행돼 이들 계좌의 자금이 이탈하면 국내 증시에 미치는 충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3대 증권사 계좌 중 지난해 국내 상장주식 투자로 5000만원을 초과하는 수익을 확정한 계좌의 잔액은 작년 말 기준 46조569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3개 증권사의 개인 위탁매매 점유율이 약 50%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금투세 대상 개인의 국내 주식 계좌 잔액은 100조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일각에서 금투세 과세 대상 투자자가 극소수여서 시장에 영향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자금 규모로 따지면 개인 전체 투자 자산의 7분의 1 수준에 달하다 보니 증시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들 개인 고액 투자자의 계좌 잔액이 올해 상반기에만 20조원가량 줄며 한국 증시의 ‘나 홀로 약세’를 부추겼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 때마다 수급을 받쳐주던 개인들이 올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고 말했다.
'큰손' 계좌서 20兆 증발…이미 '금투세 충격' 시작됐다
“금융투자소득세가 소수 부자 세금이라고요? 그들이 움직이는 자금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지금도 외국인 투자심리에 좌우되는 시장인데 금투세 시행으로 ‘큰손’ 개인 자금까지 빠지면 국내 증시 불안정성은 크게 높아질 겁니다.”(A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
◆영향력 커진 큰손 자금 이탈 우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금투세 도입과 관련해 혼란이 이어지자 국내 ‘슈퍼 개미’들의 자금 이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국내 3대 증권회사 개인투자자 계좌 중 국내 주식 투자로 5000만원 이상 수익을 낸 계좌의 잔액은 작년 말 46조5691억원에서 36조4365억원으로 10조원 넘게 줄었다. 이들 증권사의 점유율 합계가 약 50%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20조원이 감소한 셈이다.
같은 기간 전체 개인 계좌의 잔액은 345조6349억원에서 361조3957억원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지난해 말 이들 증권사의 전체 개인 계좌 평균 잔액이 1072만원이었는데 5000만원 초과 수익 계좌의 평균 잔액은 4억3468만원으로 40배 이상 많았다.
전체 계좌에 견줘 고수익 계좌 잔고가 줄어든 데 대해 증권사들은 금투세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수익률 20% 이상이 고스란히 날아가는 셈인 만큼 개인 큰손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금투세”라며 “상반기에 시장이 좋았음에도 고수익 계좌 잔액이 줄어든 것은 금투세 시행 리스크 때문에 이익을 확정 짓고 해외로 이탈한 큰손 자금이 많은 탓”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국내 증권사의 금투세 대상 개인 계좌에는 상반기 기준 70조원 이상의 자금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확정 수익이 클수록 세금이 늘어나는 금투세 구조상 추가 이탈이 우려된다. 기본공제 5000만원과 과세표준을 고려하면 1억원의 양도차익에는 1100만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수익이 5억원이라면 세금은 1억725만원이다. 수익 10억원을 거두면 2억4475만원, 20억원은 5억1975만원으로 세금이 커진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슈퍼 개미의 자금 규모와 증시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10년 전만 해도 개인당 1000억원만 갖고 있으면 큰손이라고 했지만 조 단위를 굴리는 개인도 있는 지금은 금투세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과세 이뤄지면 시장 축소 못 돌이켜
운용업계에서는 과거 파생상품 과세 이후 시장이 오히려 축소했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2013년부터 논란이 된 파생상품 과세는 진통 끝에 2016년 실행됐고, 2018년엔 세율이 양도차익의 5%에서 10%로 상향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1년만 해도 44조8530억원에 달하던 코스피200 선물 일일 평균 거래대금은 과세가 시행된 2016년 17조110억원으로 30조원 가까이 줄었다. 시장이 선진화됐음에도 2022년 기준으로 24조9130억원에 그치는 등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