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한 여름이었습니다.
밤에 잠도 안 오고 해서 아파트 베란다로 나가 담배 한 대 피우고 있는데
사람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아이와 어머니인 듯한 모자지간이 서로 대화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윗집에 누가 사는지,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고 있던 때였거든요.
아무튼 저 모자지간도 더워서 베란다로 나와 바람을 쐬고 있는 중인가 보다,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죠.
며칠 동안 무더워가 계속되고 그때마다 베란다로 나가서
바람을 쐬고 있으면 윗집의 그 모자도 나와 있더군요.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그래서 가만히 모자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우리 영철이, 오늘은 뭐 하고 지냈어?"
"아, 오늘은 계속 엄마 기다렸어."
"아이고, 착해라~."
뭐 이런 식의 일상적인 대화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일 나갔다가 늦게 돌아오나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죠.
언제나 베란다로 나가면 그런 대화를 하더군요.
한 가지 이상한 건 엄마와 아들의 대화할 때
목소리 톤이 일정하다는 것이었고,
감정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냉랭한 대화체였습니다.
한번은 새벽에 윗집에서 큰 소리가 들리더군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걸 봐서는 엄마가 아이를 혼내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참으로 무섭게 혼내더군요.
그러면서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가 웃는 소리도 들렸다가···.
조금 이상하단 생각은 했지만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이사 온 지 며칠 후,
인사도 할 겸 이웃집 사람들한테 떡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이 13층이라 아랫집이나 옆집,
윗집 정도만 돌리려고 떡을 준비해서 한 집 한 집 갖다주며
인사하고 다니다가 결국 윗집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참에 아이의 얼굴도 보고,
엄마의 얼굴도 보고 참 잘 됐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윗집 앞 현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났지만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 목소리가 들렸는데 말이죠.
아마도 제가 누군지 몰라서 그런 것 같아 최대한 밝은 톤으로
아랫집에 이사 온 사람인데 떡 좀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3~4분쯤 지났나,
아이의 엄마인 듯한 사람이 나오더군요.
정말 그 문이 열리는 순간 악취가 진동을 하고
비릿한 피비린내도 나고···.
엄마라는 사람은 단 한 번도 씻지 않은 듯했고,
떡을 받으려고 내민 손에는 손톱이 죄다 뜯겨 있었으며
눈에는 초점 하나 없더군요. 그래도 반가운지 고맙다고 웃어 줬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인상을 찌푸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칸 건너 사시는 한 아주머니가 현관문을 살짝 열고
저한테 빨리 이리로 오라고,
거기 있지 말라고 하시며 손짓을 하시는 겁니다.
저는 순간 어리둥절했습니다.
아파트는 복도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순간 딱 생각난 게···
'이거 뭔가 잘못된 거구나···.'
아이도 보이지 않고, 그 엄마는 계속 웃고 있고···.
정말 다리가 꼼짝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간신히 간신히 다리를 움직여서
그 아주머니네 집을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윗집에 사는 애 엄마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형, 가지 마···. 엄마랑 나랑 같이 놀아···."
"우리 영철이 조용히 안 해?!"
"엄마, 죄송해요···. 형··· 가··· 지··· 마···. 이히히히히히···."
아이의 목소리로 이런 말들을 아이의 엄마 혼자서 내뱉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나도록 무서워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그 아주머니의 집으로 갔는데
그 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아까 그 집 앞에서 내가 말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꼬마 아이가
나를 그 집 안으로 떠밀고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그 후로 가끔씩 베란다로 나가면 윗집에서는 아직도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영철아···. 형도 데려와···. 빨리··· 형도 데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