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아침부터 더웠다.
자기 방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던 소년의 귀에 어머니의 질책이 들려왔다.
"얘, 게임만 하지 말고 정원 좀 정리하렴. 엄마랑 약속했잖니."
소년은 생일에 가지고 싶은 게임을 사는 대신,
여름 방학 때 매일 아침 정원 잡초를 뽑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TV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니 구름 한 점 없이 탁 트인 시원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조금 짜증이 난 것 같은 표정의 소년이었지만 단념한 것 같다.
게임기의 전원을 끄고 대충 정리한 후 종종걸음을 쳐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손바닥만 하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작은 정원이었지만
그래도 초등학생인 소년에게 정원 정리는 중노동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에다 한여름의 타는 듯한 더위가 내려 쪼였다.
10분도 되지 않아 소년은 온몸이 땀투성이가 됐다.
사방 1m도 정리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앓는 소리를 내며
비틀비틀 정원 한구석의 은행나무로 다가갔다.
푸르디푸르게 잎이 우거진, 이 정원에서 유일하게 그늘이 있는 곳이다.
나무 밑에 앉아서 소년은 숨을 돌린다.
바람은 그다지 불지 않지만 그래도 햇빛을 그대로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살 것 같다고 느끼는 와중에 소년은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이
조금 튀어나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불룩하게, 마치 무엇인가 묻혀 있는 것 같은 모양이다.
소년은 심심한 나머지 그곳을 파 보기 시작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것'이 땅속에서 나타났다.
기묘하리만치 흰, 그렇지만 얼룩덜룩 보라색으로 변색된 가냘픈 팔.
그 손끝의 약지에는 백금으로 만들어진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소년은 그 반지를 알고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소년의 머릿속은 완전히 어지러워졌다.
그렇다면 아까 자신에게 정원을 정리하라고 시켰던 그 '목소리의 주인'은 도대체···?
"엄마···."
중얼대려는 도중 어느새 툇마루에서 나오고 있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수직에 가깝게 위로 쭉 찢어진 눈,
귀 부근까지 크게 웃는 것처럼 찢어 갈라진 입.
이상한 얼굴의 '어머니'였다.
그날도 아침부터 더웠다.
소년은 어머니와의 약속대로 오늘도 땀투성이가 되어 가며 풀 뽑기에 열심이다.
그 덕인지 정원은 이전보다 더 산뜻해져서 훨씬 보기 좋게 변해 있다.
은행나무는 오늘도 나무 그늘을 만들고
소년이 바람을 쐬러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밑동에는 수북하게 쌓인 흙더미가 둘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