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에 유일하게 귀신을 보지 않는 형의 경험담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 추석이 오기 전의 휴일이었다.
토요일 저녁까지 회사에서 밀린 일을 처리한 형은 벌초를 하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큰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하지만 차가 많이 막혔고,
형은 졸음을 참기 위해 허벅지를 뜯어 가며 차를 몰았다.
그렇게 네 시간 정도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밤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고속 도로를 빠져 나온 형은
어두운 시골길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차로 30분 정도만 더 가면 됐는데
길도 험한 데다가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 어두운 시골길이라 그런지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형은 마지막 집중력을 쥐어짜내며 차를 몰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른쪽 길가에 웬 아주머니 한 분과 어린 남자아이 하나가
칠흑같이 어두운 시골길을 걷고 있는 게 보였다.
형은 두 사람 옆에 차를 세우고 목적지를 물어봤는데
그곳이 마침 큰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두 사람을 흔쾌히 차에 태워 주었다.
아주머니는 뒷자리에 아이를 앉히고는 조수석에 탔다.
아이는 많이 지쳤는지 이내 잠이 들었고,
아주머니는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졸음이 쏟아진 형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그때 아주머니가 형의 어깨에 손을 살포시 얹어서 흔들어 깨웠다.
형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는데
운전 중에 졸다가 갑자기 깨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형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아주머니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많이 피곤한가 보네."
"아, 예···. 죄송합니다."
"부산에서부터 운전해서 왔으면 피곤할 만도 하지."
그런 아주머니의 말에 형은 또다시 놀랐다.
형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전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를 아세요?"
"후후··· 내가 니를 와 모르나? 니 우철이 막내 조카 아이가?"
"네, 맞아요···. 어떻게 아신 거죠?"
"니는 내를 몰라도 나는 니 많이 봤다. 근데 오늘은 와 혼자만 왔노?
어무이는?"
"아··· 몸이 좀 안 좋으셔서요."
"아··· 그래? 그럼 동생은?"
"예? 아, 동생은 좀 바빠서요."
"에이구, 바쁘기는···. 즈그 큰어무이 꼴 보기 싫어서 안 왔겠지."
"예···?"
하지만 아주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순간 기분이 찝찝했지만 보통 큰댁에 가면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 어귀 평상에 앉아서 형을 알아보며 큰아버지를 뵈러 왔냐고
안부를 물으셨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몇 가구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동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 사람을 태운 차가 큰집에 도착할 무렵,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꾸벅꾸벅 졸며 간신히 운전을 하던 형이
마을 입구의 갈림길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전봇대에 들이받은 것이다.
"아윽···.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다친 데는 없으세요?"
하지만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아주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치힛··· 흐흣··· 하하하핫···! 흐흐하하하핫···."
마치 참고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 봤더니
뒷자리에 차고 있던 아이가 장난스레 웃으며 형을 쳐다보고 있던 것이다.
그때 아주머니가 아이를 다그치는 듯한 말투로 호통을 치셨다.
"니 웃지 마라이? 어?"
어안이 벙벙해졌던 형은 그 뒤로 이어지는 아주머니의 말에 온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아직 안 끝났다."
대체 뭐가 아직 안 끝났다는 거지.
"안 가나?"
"아···. 네, 네."
그런 아주머니의 재촉에 형은 허둥지둥하며 후진을 시도했다.
하지만 차가 말을 듣지 않았고,
그러자 아주머니가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
"내 먼저 갈게. 천천히 온나."
차에서 내린 아주머니는 앞으로 마구 뛰어가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에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심한 어지럼증을 느낀 형은
흐려지려는 정신을 겨우 붙잡으며 룸미러에 걸려 있는 염주를 손에 쥐고
불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히히힛···. 웃기고 있네···."
그렇게 아이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더니
길 옆에 있는 논으로 걸어갔다고 한다.
형은 그 길로 차를 버리고 큰집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갔다고 한다.
평소에 형이 어머니와 나에게 늘 하던 말이 있었다.
"야,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 그리고 인마. 너는 겁이 많으니까
니 눈에만 자꾸 헛것이 보이는 거지. 사내자식이··· 쯧쯧쯧···."
하지만 형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나를 비웃거나 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