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산과 김해 사이에 있는 신도시에 살고 있다.
신도시의 특성상 아파트나 상가가 많기는 하지만
그 주변은 개발이 덜 되어 있는 편이다.
우리 집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이 몇 갈래 있기는 하지만
나는 차도 많이 다니지 않고 신호도 없는 옛날 길을 이용하는 편이었다.
물론 새로 만든 길이 포장도 잘 되어 있고 찾아가기도 편했지만
신호 대기를 여러 번 해야 했고,
옛날 길에 비하면 조금 더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옛날 길은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서 엄청나게 어두웠다.
한참을 달리다가 길가에서 고양이라도 확 튀어나오면
정말 심장이 요동을 친다.
어느 날, 새벽 1시쯤 되었을 때였는데
급히 부산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차를 몰고 어두운 옛날 길을 달리고 있는데
마침 보름달이 밝게 떠서 참 좋았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이상하게
뒤통수가 따끔따끔거리는 것이었다.
기분이 왜 이럴까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조수석 쪽을 힐끗 봤는데
웬 여자가 내 옆에 떡하니 앉아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옷차림 같은 건 미처 보지 못했고,
그냥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만 눈에 들어왔다.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은 후 핸들에 얼굴을 묻고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슬쩍 옆을 돌아봤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분명히 어떤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을 봤는데 말이다.
나는 ‘요즘 몸이 좀 허한가’ 하고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그로부터 대략 2주일 정도 지나갔다.
어쩌다 보니 밤에 또다시 부산에 갈 일이 생긴 나는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차를 몰아 옛날 길로 향했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운전을 하는데 그날 내 앞쪽에 소나타
한 대가 정말 천천히 가고 있었다.
그 시간에는 그 길에 차가 거의 없는데 좀 의아했다.
다른 차도 없는 상황에서 소나타는 세월아 네월아 느릿느릿 가고 있었고,
평소 같았다면 추월했겠지만 그날은 왠지 내키지가 않았다.
어차피 급한 일도 없겠다, 나는 소나타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옛날 길을 타고 쭉 가다 보면 끝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우회전으로 꺾어서 큰길 쪽으로 합류되는 곳이었고,
하나는 큰길 바로 아래에 뚫려 있는 굴다리를 지나서
반대 차선으로 합류되는 쪽이었다.
나는 우회전을 하기 위해 미리 깜빡이를 켰다.
그런데 앞서가던 소나타의 뒷유리에 두 여자의 얼굴이
갑자기 확 나타나는 것이었다.
여자의 얼굴은 나를 보며 기분 나쁘게 웃어대고 있었다.
내 차는 코란도였는데 차가 일반적인 세단보다 높아서
밤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따라가면 앞 차 내부가 얼추 보였다.
소나타 내부에는 불이 켜지지 않은 상태였고,
나 역시 우회전을 할 거라서 소나타 뒤쪽으로 차를 바짝 붙인 상태에서
미등만을 켜 뒀었는데 두 여자의 얼굴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조명 없이는 절대로 그렇게 보일 수가 없는데 말이다.
웃는 얼굴이 눈을 부릅뜬 상태로 치아를 다 드러내며 웃는데 정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소나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굴다리로 슥 들어가 버렸고,
나는 또다시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음 날 바로 성당에 가서 팔찌로 된 묵주를 샀고,
성수를 얻어다 차 곳곳에 뿌려댔다.
그래도 너무 불안해서 차량 대시보드에 붙이는 십자가까지 사서는 생난리를 피웠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나는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졌고,
내 코란도는 폐차되고 말았다.
그 후로는 느낌이 좀 싸하다 싶으면 절대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
그 여자들은 대체 뭐였을까.
내 사고는 그때 이미 예견된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