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만난 건 그날이었습니다.
한 달 전, 혼자 주말에 집에 박혀서 낮잠만 자다가
오후 4시쯤이 돼서야 몸이 간질간질해져서 운동도 하고
기분 전환도 할 겸 걸어서 10분 남짓 걸리는
동네의 조그마한 산을 오르는데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여태 왜 한 번도 안 왔는지.
산속의 싱그러운 내음과 살랑살랑 흔들리는 풀 소리에
한껏 취해서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 시간 정도 흐르고 산 중턱쯤 올라왔을 때,
[쉼터]라는 표지판을 보았습니다.
벌써 해가 지려고 하길래 벤치에서 조금만 쉬었다가
내려갈 요량으로 팻말을 따라갔죠.
그런데 거기서 흰색 원피스에 긴 생머리에 정말이지
너무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벤치에 홀로 앉아 초점이 없는 눈빛으로
산 아래쪽에 있는 인천의 작은 동네의 전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저는 난생처음으로
첫눈에 반한다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저는 주저 없이 말을 걸었고, 그 여성은
얌전하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저의 호의를 잘 받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희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그녀에 대해 알아 가는 단계였고,
이번에 데이트를 할 겸 서울에 당일치기로
놀러 가서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할
계획으로 들떠 있었죠.
왜냐하면 제가 평일에는 일한다고 바빠서 이렇다 할
데이트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울의 놀거리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있던 도중, 한 블로그에서
서울의 한 동네에 소름 끼치도록
점을 잘 보기로 소문난 곳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게다가 가족, 연인 할 것 없이 모든 연령층에게 점을 봐 준다고요.
그 인파가 감당이 안 돼서인지 3일에 한 번만 운영하고,
그날 하루마저도 오후 6시부터 8시까지만 연다고 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용하길래···.
저야 뭐 재미로 점을 본다지만 돈을 목적으로
한 집은 아닌 것 같아 더욱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날 신촌 사거리와 강남의 번화가에서
이것저것 하며 놀다가 그 점집이 오픈하는 시간에
딱 맞춰서 차를 타고 그 동네로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번화가도 아니고 소박한 동네였던 것 같지만
정말 소문대로 줄이 끝도 없이 서 있더군요.
그때 그녀가 표정을 한껏 찌푸리며 그냥 돌아가자고
징징거리는 걸 그래도 이까지 왔는데 기다려 보자고
어르고 달래 주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기다렸을까요.
정말 운 좋게도 저희가 마지막 차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은 통로가 나오는데
양쪽 벽에는 여러 신들을 모시는 듯한 그림들,
그리고 촛불도 드문드문 있어서 묘한 느낌을 받는 데 충분했습니다.
좁은 통로 끝에는 형형색색의 구슬로 된 발이 쳐져 있었는데
고개를 숙이며 한 팔로 제쳐 들어가자마자 무당으로 보이는
노파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희를 보자마자 눈동자가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가더니 대뜸 소리를 치는 겁니다.
기겁을 하면서 말입니다.
"이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무슨 배짱으로 찾아온 게야!"
이렇게 호통을 치는데 점술사란 사람이 그렇게 당황해서
손까지 떠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녀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툭 뱉더니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혼자 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이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넋을 놓고 있다가
고개를 재차 흔들며 정신을 차린 후 그 노파에게
말을 무슨 그딴 식으로 하냐며 소리를 버럭 질렀고,
저는 그녀를 따라 서둘러 나갔습니다.
무슨 이런 싸구려 같은 곳이 용하다고 소문이 났다니,
다시는 오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헌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충격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밖으로 나가 버린 그녀가
사라져 버린 겁니다. 연락을 해도 받지 않고,
서울의 한 동네 한복판에서 저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죠.
저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그녀의 집 전화번호나
위치도 모르는 상태라서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혹시나 그녀가 올지도 몰랐기에 한 시간 정도를
그 주위에서 기다리다가 정말 돌아갔나 싶어서
저는 다시 인천으로 넘어갔습니다.
가는 길에 오늘의 데이트를 돌아보면서 혹시나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나 생각하고 또 해 봐도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단순히 노파가 던진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저를 피할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뜬금없이 사라진 그녀를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가 휴대폰만 바라보며 그녀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려 봤지만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연락이 닿을 길이 없었기에 그저 기다리면서
일을 하며 보내다가 돌아오는 주말에 너무나도
괴로운 마음에 혼자 소주를 사 들고 와서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었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이 가는 게
그 노파가 한 말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고,
뭔가 단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몸이 움직이는 대로
차를 끌고 서울의 그 점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주말이 지나가 버리면 일 때문에 시간이 빠듯해지기에
다른 고민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취기와 분노로 굳게 닫혀 있는
점집의 대문을 걷어차며 당장 나오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댔고,
곧이어 그 노파가 천천히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순간 열린 문을 잡아당기면서
"당신이 그 헛소리를 한 뒤로 그녀가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 노파는 네가 찾아올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들어오라더군요.
그러더니 그때의 모습과는 정반대인
굉장히 차분한 얼굴로 흥분한 저에게
차를 한 잔 내 주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여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기가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냐고
물어봤더니 역으로 저에게 다시 묻더군요.
"자네, 그 여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그렇습니다. 그녀에 대해서 가족은 몇 명인지,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며 사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얼마 만난 적도 없고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저에게
노파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자네하고 그 여자가 들어올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네.
자네가 두 발로 걸어 들어올 때 그 여자는 흉칙한 몰골을
해서는 바닥을 스멀스멀 기어 들어오더군."
그 말을 듣는 순간, 처음 그녀와 손이 스쳤을 때
이상하리만치 차가웠던 기억이 떠올랐고,
인정할 수 없는 마음에 다시금 고개를 흔들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희 동네로 돌아가서 한 달 전
그녀와 처음 만났던 산을 랜턴 하나에
의지한 채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죠.
제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곳에 가면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강한 믿음이 제 마음속을 지배했습니다.
그저 너무나 보고 싶었고, 그녀의 입에서
그 노파가 한 말은 모두 거짓이라는 말을
직접 듣고 싶은 심정이었죠.
저는 어두운 산길을 다리가 저릴 때까지 뛰어오르다가
그 벤치가 있던 곳에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습니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굵직하고 키 큰 나무들이
허리를 굽혀서 모두 저를 뚫어져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새벽의 산은 정말 음산했습니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 랜턴 불을 비추며
[쉼터]라는 표지판을 찾고 있었는데
그게 당최 보이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이쯤이었는데···."
그러면서 홀리듯이 자꾸만 어디론가 발길을 계속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그녀가 저를 인도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라고. 그리고 머지않아
언덕의 벤치가 보이더군요.
그녀와 처음 만났던 그곳.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 벤치 옆에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조그마한 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마치 짐승이 풀숲을 헤치며 다니는 듯한
소리가 제 귀를 간지럽혔고, 이내 저는 뒤를 돌아
그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랜턴을 비췄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그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