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 선 채로 헤실헤실 대던 프로세의 표정이 굳어졌다.
위에 떠있던 그가 거세게 낙하하여 무덤덤하게 말했다.
"네가 말하는 대결이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
"야, 안톤! 프로세는 고작 이틀 전에 왔어. 신입생에게 우리 학교
싸움짱이 정식 대결을 하자고 하다니, 제정신이야?
수진이 안톤을 나무라고 있다.
하지만 안톤은 이미 결심이 섰다는 듯
그녀의 말을 한 귀로 흘린 채 프로세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187센티의 오차 없이 같은 키의 두 남자의 코가 맞닿을 것 같다.
"말 그대로 너랑 나, 힘 대 힘으로 싸워보자는 말이야."
안톤이 눈을 부라리며 험상궂은 인상을 드러냈다.
그에 반해 프로세는 무안하다는 듯 고개를 내리깔고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프로세를 보고 있는 안톤은 생각했다.
ㅡ 이 자식 쫄았네.
그가 이때라는 듯 기세를 몰아 말을 이었다.
"지는 사람이 이긴 사람의 따까리가 되는 거야."
"관심 없어. 싫어."
프로세가 떨궜던 고개를 치켜들며 부정을 표했다.
이에 안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열이 뻗쳐 당장이라도 눈앞의 프로세를 후려 갈길 듯한 마음을 표출하는듯한
그의 꽉 쥔 주먹은 프로세의 부정을 부정하는듯했다.
"내가 지금 장난치는 것 같냐?"
"뭐 때문에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난 널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건방 떠는 것 보니 내 능력이 힘만 쌘 건 줄 아나 본데, 아주 큰 착각이야."
ㅡ 뚜벅뚜벅
프로세와 안톤의 대화가 이어지던 중, 한 여학생이 안톤의 뒤로 걸어왔다.
그녀는 까치발을 들어 안톤의 귀를 간지럽히듯 속삭였다.
"잠시 얘기 좀 할까?"
그녀가 이렇게 따로 이야기를 하자는 듯이 말하는 데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안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예지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오디세이의 작고 큰일들을 미리 당사자에게 알려주곤 하였다.
안톤이 잠시 고개를 틀었다.
"나탈리, 무슨 일이야?"
"너 싸우다가 크게 다칠 것 같아. 너무 무리하진 마."
나탈리의 뇌리에 스쳐 지나간 안톤의 모습이 프로세와의 싸움에서 크게 다쳤었다.
그녀는 안톤이 걱정되어 말해줬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안톤의 자존심은 그녀의 충고로 인해 더는 구겨질 데가 없을 만큼 구겨졌다.
그는 나탈리가 말하는 게 예지라는 걸 인지하고 있기에 더욱더 화가 났다.
그의 분노는 최고의 자리를 빼앗길 것 같은 예감이 확신이 되는 분노였다.
그렇다. 단순한 열등감이었다.
"내 일이야. 신경 쓰지 마!"
안톤이 소리쳤다.
나탈리는 처음 보는, 이제까지 보지 못한 안톤의 구겨진 인상에
주춤하여 뒷걸음질을 치다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안톤을 짝사랑하는 나탈리가 말없이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씩씩대는 안톤이
단추 셔츠를 입은 프로세의 멱살을 홱 하고 낚아챘다.
"야, 고상 한척 대단한척하지 말고 나랑 떠보자고."
투둑ㅡ
프로세의 멱살에 잠긴 콩 단추 하나가 터져 바닥에 떨어졌다.
프로세가 떨어지는 단추를 쳐다보고는 곁눈질로 바로 눈앞의 안톤을 째려봤다.
"네가 이러는 이유를 지껄여봐. 그럼 네 뜻대로 제대로 상대해 주지."
"그래? 이유를 말해줄게. 넌 내 따까리가 될 테니까 그대로 지켜라."
첫째로 수진의 곁에 얼씬거리지 마라.
둘째, 건방지니까 같잖은 능력으로 설치지 마라.
셋째, 앨런에게 받은 내 정산금은 한 번에 3000이반을 넘긴 적이 없는데,
네가 한 번에 20000이반? 넌 내 따까리가 되면 네 몫은 다 내 거다.
아, 어차피 이 자리에서 뒤지려나?
아, 미안해. 겁먹어서 제대로나 싸우려나?
안톤이 비아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의 말본새에 프로세가 정곡을 찔렀다.
"그렇구나. 단순히 나에 대한 열등감이었구나. 나도 이렇게 태어나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내가 이렇게 네가 열등감 느끼게 태어난 걸 어떡해?"
툭ㅡ
간신히 잡고 있던 안톤의 위태로운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훅ㅡ
안톤의 주먹이 프로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람을 갈랐다.
옆의 구경꾼들 모두 바람이 갈리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지켜보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안톤의 주먹을 눈으로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런데 프로세가 전혀 미동도 없었다.
일단, 맞는 소리 자체가 들리지가 않았다.
프로세가 안톤에게 멱살을 잡힌 채로 고개를 돌려
뺨 옆으로 날아와 멈춰 서있는 주먹에 눈을 맞대고 말했다.
"뭐 하자는 거지?"
기세 좋게 소리까지 뿜어내며 날아온 안톤의 주먹이
프로세의 뺨 옆에 멈춰 부들부들 떨고 있다.
"너.. 뭔 짓을 한 거냐?"
저 자식의 팔은 추욱 늘어져있다. 손으로 막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팔을 움직일 수가 없다. 멱살을 잡고 있는 손까지도..
안톤은 불과 조금 전에 놓았던 이상의 끈을 다시 잡았다.
이게 도대체 뭐지..?
프로세가 한 손을 펼쳐 올렸다.
그리고 사양한다는 듯 시야 앞의 주먹을 밀어냈다.
밀려진 주먹은 밀려진 채로 그대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프로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야, 이 셔츠 아버지가 사주신 첫 번째 셔츠야."
프로세가 주먹을 쥐어 안톤의 눈앞에 서서히 가져다 댔다.
안톤은 온몸이 굳어버린 채로 눈알만 굴리며 슬금슬금 올라와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프로세의 주먹을 이를 악물고 쳐다본다.
그런데 안톤을 때릴 줄 알았던 프로세의 주먹 쥔 손이 펼쳐졌다.
그러자 안톤이 잡고 있던 프로세의 멱살을 잡은 손도 동시에
스르르 풀려 펼쳐졌다.
"이 미친, 나한테 뭔 짓을 한 거야!"
"자, 이제 누가 누구의 꼭두각시지? 아 꼭두각시가 아니고 따까리랬지 참."
구경꾼들은 이 상황을 이해했다.
언뜻 봐도 천하의 안톤이 프로세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내 몸이 풀리기만 해봐. 죽여버릴 거야!"
프로세는 살의 없는 살기를 펼치는 안톤의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고
그의 만두 같은 귀에 입을 바싹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야 사람을 죽여나 봤어? 죽여본 적 없으면 그 말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프로세가 떨어진 단추를 줍고선 말을 이었다.
"이번은 봐주겠는데, 또 까불면 네가 터트려 떨어트린 내 단추처럼 땅에 처박아버릴 거야."
안톤에게 사람을 죽여나 봤냐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말은
마치 본인은 죽여봤다는 의미처럼 들렸기에 안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결박된 것 같은 몸이 움직이게 되자 무게중심을 잃고 휘청 주저앉았다.
프로세가 뒤를 돌아 강당 밖으로 나가려고 발길을 돌렸다.
화장실을 가려는 건가?
저 자식이 뒤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나와 저 자식을 번갈아 보고 있다.
너무 쪽팔려서 숨고 싶을 지경이다.
지금 뒤에서 기습을 하면 한방에 재워버릴 수 있다.
건방지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어간다.
거리는 10미터 즈음.
지금 주저앉아있는 내가 소리 없이 기습하기에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솔직히 무섭다.
그렇지만 지금 가만히 있기엔 내가 너무 웃음거리다.
지금 거리는 15미터 즈음.
.
.
더 늦기 전에 뒤에서 소리 없이 친다 ㅡ
.
.
주저앉아있던 안톤이 앉은 자리에서 바닥을 박차는 추진력으로
프로세에게 까지 날은 채로 도달한 시간은 채 0.5초도 걸리지 않았다.
공중에 뜬 채로 허리를 돌리고 주먹을 내지른 시간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는 체감상 평소보다 빠른 속도였기에 승리를 확신했다.
ㅡ 이겼다. 이건 절대 못 피한다.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프로세가 분명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톤이 주먹을 내질렀을 때, 그의 몸은 또 한 번 굳었다.
안톤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ㅡ 아, 또 움직일 수가..
하지만 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텐데..?
뒤에서 기습을 해도 안되는구나.
이 자식은 괴물이다. 절대 못 이겨.
ㅡ 콰쾅!
귀가 따가울 만큼의 굉음이 울렸다.
프로세의 치켜세우는 손짓에 바닥에 곤두박질친 안톤이 곧바로 둥실둥실 떠올라온다.
힘없이 추욱 늘어진 채 떠오르는 안톤의 팔다리는 그가 이미 정신을 잃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안톤이 주저앉아있던 바닥을 박차올라 도약한 시점부터 그가 곤두박질
치기까지가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1톤의 쇳덩이가 힘없이 떨어져도 금이 가지 않던 대강당의 바닥이
안톤의 곤두박질에 터지고 벌어져 갈라진 금이 생겼다.
이 삽시간에 일어난 순간을 눈으로 담은 사람은 몇 없다.
그저 하나 되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결과만 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놀란 토끼 눈들은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ㅡ 쾅! 쾅! 쾅! 쾅!
프로세가 연이어 위아래로 손짓하여 안톤을 내리찍었다.
계속해서 터지고 벌어져 금이 번져가는 강당 바닥만큼
안톤 또한 피와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고 있다.
그때 구석진 제 전용석에 앉아있던 마이콜이 보다 못해
휙 하고 튀어나와 프로세의 손목을 낚아챘다.
"이대로 계속 찍어대다간 제아무리 튼튼한 안톤도 살아남지 못하겠어. 그만하렴."
"제 멱살을 잡고 죽이겠다는 걸 한번 봐줬어요. 또 까불면 쟤가 터트린 제 단추처럼
땅에 처박아버리겠다고 말했고요."
프로세는 용해관을 깨부수고 나왔을 때 자신을 뒤쫓아 죽이려고 달려드는 제국의 감사를 살려줬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암살 시도는 더욱 철저하게 준비되어 프로세를
다시 찾아왔다. 그때 반쯤 죽어가며 숨을 헐떡이던 감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프로세의 삶에 있어 뇌리에 쐐기를 박아버린 것이다.
ㅡ 죽이지 않으면 다음번엔 더욱 철저하게 돌아올 것이다.
프로세의 손목을 움직이지 못하게 제지하는 마이콜의 손이 떨리고 있다.
마이콜이 잡고 있는 프로세의 손도 함께 떨리고 있다.
그에 따라 프로세의 떨리는 손과 함께 움직이는 안톤의 의식 없는 몸뚱어리는
마치 미끼를 물어 수면 위로 막 뛰어올라 고통에
몸부림치는 물고기처럼 파닥대고 있다.
마이콜이 그렇게 고꾸라져 있는 안톤을 가리켰다.
"정신 차려, 정신 차리고 잘 봐. 이미 기절해서 몸을 가누질 못하잖아. 그만하라고!"
프로세가 마이콜의 말에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 정신을 차렸다.
학교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세는 자신에게 해를 가하려는
안톤을 그저 적으로 인식하고, 저렇게 제 몸을 못 가누는
상태로 만들어놓고도 계속 죽일 듯이 공격을 하려고 했다.
마이콜이 그를 붙잡은 상태에서도 그는 인사불성이 되어
또 공격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정신이 나갔던 것 같습니다."
"정신 차렸으면 됐다."
마이콜이 안톤에게 다가가 맥을 짚었다.
"수진, 안톤의 심박수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네 선생님, 제가 한번 볼게요."
수진은 안톤의 상태를 확인해 보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능력이 발현된 후로 본인에게조차 회복 능력을 제대로 사용해 보지 못한
수진이 치료 시키기에는 상당히 큰 부상이었다.
수진의 손에서 일순간에 영롱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안톤에게 흡수되는 그 빛은 채 5초도 지속되지 못했다.
수진은 그 짧은 시간에 힘을 소진해 버린 것이다.
"선생님, 저 눈 풀린 거 보여요? 지쳤고 더 이상 힘이 없어요. 흘린 피를 어느 정도
복구해놨으니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아요."
맥을 짚고 있던 마이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점점 맥이 돌아오는구나. 하아.. 오늘은 보건 선생님이 쉬는 날인데."
마이콜이 여전히 치료가 필요한 안톤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