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제가 겪은 실화입니다.
툭하면 술 먹고 집에 안 들어가고 아무 데서나 자고 가던 시절이니까
대학교 신입생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날도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앞에서 거하게 술을 마시고 새벽 두 시쯤
학교(라고 쓰고 산이라고 읽는) 중턱에 있는 학생회관으로 올라갔습니다.
같이 술 마시던 친구들은 고시원이나 기숙사에 살았기 때문에
저 혼자 학관 꼭대기 층에 있는 동아리방으로 첫차 시간까지
잠시 눈을 붙일 겸 해서 간 것이었습니다.
제가 속했던 동아리는 음악 동아리여서 아무래도 소음 문제 때문에
학관 꼭대기 제일 구석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때는 여름이어서
그늘지고 선선한 동아리방이 자고 가기 딱 좋은 장소였습니다.
거기 있는 소파가 좀 더럽기는 해도(자고 있을 때 벌레가 물고 갑니다.)
참 편해서 그날도 그 소파에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이상하게 술이 떡이 됐는데도 잠이 잘 오지 않더군요.
그래서 술김에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노는
동네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새벽인데 아직도 안 자냐
또 술 먹고 학교에서 자냐,
조심성도 없다 등등 정신없는 상태로 재미있게 수다를 떨었습니다.
제가 소파에 누워 기타를 치면서 휴대폰은 스피커 모드로 하고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이 녀석이 말하다가
"캬아아아아아아악!!!"
하고 갑자기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제가 화들짝 놀라서
"야, 뭐야?! 뭔데?! 왜 그래?!"
하면서 휴대폰에 대고 친구에게 괜찮냐고 묻는데
친구는 소리를 질러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전에 하고 있던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겁니다. 제가 어이가 없어서
"야, 왜 갑자기 휴대폰에 대고 소리를 질러? 놀랐잖아."
라고 물었는데 친구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언제 비명을 질렀냐, 나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하면서
장난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가족과 같이 사는 친구가 자기 집에서,
그것도 새벽에 그렇게 소리를 지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때가 새벽이었고 주변에 아무도 없었던 데다 하필이면
그늘진 동아리방에 있어서 조금 무서웠지만
저는 그냥 내가 술에 많이 취해서 통신 장애로 인한
기계음을 사람의 비명 소리로 착각했구나 라고
생각하고 친구와 계속 통화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또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캬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악!!!"
그때 확신이 들더군요.
‘이건 절대 기계음이 아니다. 내 친구가 미쳤거나 내가 미친 거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제가 그때 스피커폰으로 해 놓고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 둔 상태여서 그 비명 소리가 휴대폰에서 나오는 건지,
아니면 휴대폰 쪽 어딘가에서 나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겁니다.
책상 너머 창문일 수도 있고, 책상 아래일 수도 있었습니다.
친구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친구가 하던 이야기를 끊고
"너 방금 비명 소리 들었어? 아까 그 소리가 또 났는데."
라고 하자 친구는
"비명 소리는커녕 아까부터 드럼? 봉고?
아무튼 네가 뭐 북 같은 거 치는 소리 때문에 네 목소리도 잘 안 들린다."
라고 했습니다.
순간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나는 기타를 치고 있었지, 드럼이나 봉고를 치고 있었던 게 아닌데···.
저는 그 길로 짐을 싸서 동아리방을 나왔습니다.
하필 구석에 있는 방이라서 불 꺼진 긴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휴대폰에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학교 아래로 뛰어 내려가서는
첫차 시간까지 편의점에서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때 친구가 한 말은 이랬습니다·····.
"야, 네 친구가 옆에서 비명 지르는데 무슨 일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