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 집이 있는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늘 그렇듯 술을 마시던지 게임을 하던지 해서 새벽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하늘에 불그스름한 안개 같은 것이 잔뜩 낀 듯하다.
황사?
아니면 미세먼지 같은 건가?
길고 긴 골목 저 끝에 있는 주황빛 가로등 하나.
그마저도 고장이 나려는지 껌벅거렸다.
아, 그리고 또 저쪽에 수레를 끌고 걸어가는 여자가 있다.
뭔가 이상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뒤태는 그저 평범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인다.
허리까지 축 늘어진 상할 대로 상한 긴 생머리에
비쩍 마른 체형, 반팔 티 아래쪽으로 드러난 앙상하고
창백한 피부를 가진 여자는 빈 수레를 끌고 터덜터덜 가고 있다.
너무도 이질적인 그 모습에 갑자기 겁이 났다.
그 여자와 나 사이의 거리는 대충 6~7m 정도. 골목은 무척 길었고,
그 중앙에 우리 집이 있다.
그런데 골목에 들어선 순간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여자의 걸음걸이가 느려도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적막한 골목을 울리는
수레바퀴 소리를 듣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빠른 걸음으로 여자를 앞질러 가고 싶지만
이 어두운 새벽에 붉은 하늘 아래의 기묘한 뒷모습을 한
여자를 앞질러 가기에는 왠지 두려워진다.
며칠 전에 공포 영화를 봐서 그런가.
내가 여자를 앞지르는 동시에 차가운 손이
내 어깨를 잡아당길 것만 같다.
그리고 눈, 코, 입이 없는 끔찍한 얼굴이 나를 노려보겠지.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내 걸음이 어느새 여자와 속도를 맞추고 있다.
행여 뒤를 돌아볼까 발목에 힘을 주어 최대한 조용히 걷고 있는데
여자가 너무 느리게 걸어서 쥐가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왠지 저 얼굴을 봐서는 안 될 것만 같다.
다리를 절뚝이는 것도 아니고,
이 시간에 동네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아닐 텐데
대체 왜 저렇게 느리게 걷는 거지?
앞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한 걸음씩 나아가는
여자의 뒷모습에 숨이 턱 막힐 것만 같다.
평소라면 1분도 안 걸릴 거리를 그 여자의 걸음에
맞추다 보니 족히 10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드디어 우리 집이 있는 빌라 건물의 현관문 앞에 섰다.
왠지 신경이 쓰였던 나는 여자의 뒷모습을 한 번 힐끗
쳐다본 후에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 순간, 여자는 골목 끝자락에 있는 하나뿐인
가로등 밑을 막 지나가고 있었다.
껌벅이는 주황빛 조명 아래로 여자의 뒤통수가 보인다.
어? 잠깐. 저 부스스한 머리카락 사이로 우뚝 튀어나온 혹 같은 건 뭐지?
에이, 설마·····. 살짝 뒷걸음을 치며 자세히 봤더니···
코다.
혹이 아닌 그 여자의 코! 저, 저게 나를 제대로 농락했어···! 그리고·····
"큭··· 흐흐흐흣··· 헤헤헷, 하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하핫!!!"
이제야 알았냐는 듯 참았던 웃음을 터뜨린 여자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
현관 앞 계단에 다리 하나를 걸친 채 얼어붙어 있는 나를 향해
여자는 머리카락이 모두 뒤로 넘어가도록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