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직접 겪은 일입니다. 지인을 A라고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A가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집에 갔는데
부모님께서 해외여행을 가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집 안은 이사 갈 준비를 모두 마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엄마, 멀쩡한 집에서 왜 갑자기 이사를 가요? 무슨 일 있어요?"
그렇게 A가 물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부모님은 말을 아끼셨습니다.
이사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이 아파트는
입지 조건도 좋았고,
환경도 여러모로 괜찮아서 더욱 의아해했습니다.
부모님은 A에게 이 집에 혼자 있으려면
차라리 다른 곳에서 자고 오라며 용돈을 주시고
해외로 떠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A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집은 아파트라서 현관문이 휑한 복도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복도와 연결된 방의 창문과 현관문에
부적이 잔뜩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양쪽에 있는 옆집은 모두 이사를 간 뒤였기에
복도는 더욱 황량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부모님이 모두 떠나시고
A는 집에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집에 붙여진 부적과 부모님의 석연치 않은 행동이
마음에 걸렸던 A는 왠지 잠들기가 두려워서
늦게까지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A는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 잠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얕은 선잠에 빠졌을 바로 그때,
잠결에 누군가 현관을 노크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A는 졸린 눈을 비비며 나가 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시간에 누가 집에 오겠냐는 생각에
그냥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잠시 뒤 들려온 그 목소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의 것이었죠.
"나야. 문 좀 열어 줘."
그렇게 현관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아버지의 것이었고, 깜짝 놀란 A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이미 해외여행을 가셔서
외국에 계시기 때문에 문밖의 저 목소리는
아버지일 리가 없었습니다.
겁에 질린 A는 숨을 죽이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바깥의 누군가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현관문 앞에 있는 누군가가
이제는 더 이상 말조차 하지 않았고,
노크 소리는 문을 두들기는 소리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똑 똑 똑]
"나야. 문 좀 열어 줘. 급해서 그래. 문 좀 열어 줘."
이번에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A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덜덜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시 후, 다시 목소리는 사라지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더욱 시끄러워졌습니다.
A가 자고 있던 방은 복도와 맞닿아 창문이
복도 쪽으로 열려 있는 방이었습니다.
침대는 하필 창문 아래쪽에 있었고,
A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완전히 얼어 있었습니다.
그러자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그 목소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A 자신의 목소리였습니다.
A는 겁에 질려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습니다.
창밖의 무언가는 한참 동안 귀에 속삭이듯 ‘문 열어’를 반복했고,
현관문은 누군가가 발로 미친 듯이 걷어차고 있었습니다.
결국 A는 그대로 기절했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 간신히 일어난 A는 현관문을 열어 보고는
다시 한번 겁에 질려 버렸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손에 밀가루를 묻히고 손바닥으로 문을 두들긴 듯,
현관문에 하얀 손바닥 자국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여행에서 돌아오신 부모님은 곧바로 이사를 가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