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을 전공한 내 친구 A는 어릴 때부터 말을 워낙 잘 해서 말싸움으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친구였다.
심지어 녀석은 거짓말을 할 때도 그 논리가 너무 완벽해서 빈틈이 없었는데
거기에 괜히 반격을 했다가 내 꾀에 내가 넘어간 적도 있었다.
또 다른 친구 B는 대대로 무속인 집안인데 녀석도 그 기질을 타고났다.
하루는 카페에서 만나 커피를 마셨는데 A와 B가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A는 무귀론을 주장하며 차분하게 세상에 귀신은 없다는 것을 설명했고,
그것을 듣고 있던 나와 B는 평소대로 A의 페이스에 말리고 있었는데
B는 A의 무귀론에 반박하지도, 귀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귀신은 존재할 수 없는 거야. 알겠지?"
"어··· 네 말 듣고 보니까 애초에 귀신이 있을 수가 없는 거네."
"근데 귀신은 있어."
"그래? 그럼 그걸 증명해 봐. 원래 입증 책임이라고,
재판이나 소송 과정에서도 자신의 주장이 사실임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거거든.
그걸 주장하는 사람이 명확한 증거를 대야 되는 거라고."
"그래. 곧 나타날 거야."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여성이 A에게 다가왔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대학생 같아 보이는 여성은 검은색 후드티에
흰색 캔버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귀신은 있어요."
"네?"
"귀신은 있다고요."
"참 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그 말 증명해 봐요.
저는 없다는 걸 증명했으니까요."
"세상에는 우연이라는 게 있잖아요?
우연은 증명할 수 없을 때가 있는 법이에요.
귀신도 이와 비슷하죠.
우연히 일어난 건 아니지만 귀신이 의도한 그런 거요."
하지만 여성의 반박은 생각보다 허술했고,
귀신의 존재 유무를 놓고 그녀는 A와 30분 정도를 토론했다.
그 모습을 꽤 흥미롭게 지켜봤는데 그녀는 결국 A에게 휘말려서
몹시 분해하며 자신의 말이 맞다고 우기기까지 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만화 속 주인공을 실제로 만났다고 하는 것과
같아 보였는데 상황이 A 쪽으로 완벽하게 기울어지자
그녀는 울먹이기 시작했고, A는 계속해서 그녀를 몰아붙였다.
결국 서로 목소리가 높아지자 카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주시했고,
나는 A를 말렸지만 녀석의 흥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당신, 그믐달이 뜨는 날 조심해야 될 거야···."
그렇게 그녀는 A에게 저주와 비슷한 말을 남긴 뒤 밖으로 나가 버렸고,
우리는 A가 그녀를 협박으로 신고하겠다는 것을 겨우 말렸다.
밖으로 나와 보니 이미 날이 다 저물어 있었고,
까만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B가 입을 열었다.
"야, 너 어떻게 하려고 그래?"
"뭘 어떻게 해? 협박당한 거? 하! 그딴 거 하나도 안 무서워.
사람이 아는 게 없으면 괜히 목소리만 커지고 욕을 하거든."
"허··· 그래?"
그런 A의 말에 박수무당인 B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생각에 잠겼다.
며칠 후, 그날은 그믐달이 떴지만 A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B가 A와 함께 했었는데
A에게 저주의 말을 한 여성은 그날 카페에서 논쟁을 벌인 후로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윽고 그믐달이 떴고, 저녁에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B가 그때 그 카페로 오라며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곧장 집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가 보니 A가 한쪽 구석에 앉아서
문 쪽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녀석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격하게 안아 주었다.
그리고..
"그때 만났던 그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나를 계속 따라와···. 나 좀 살려 줘···."
"뭐?!"
어떻게 A의 행방을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A에게
해코지를 하려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대학교 1~2학년 정도로 보이던
그 여성을 두려워할 A가 아닌데 뭔가 이상했다.
"야, 너 괜찮냐? 그 여자가 너 스토킹이라도 해?
아니면 흉기를 들고 있었다거나,
다른 사람과 같이 와서 위협하거나··· 그렇게 한 거야?"
"아니···. 흉기 같은 건 전혀 없었고, 일행이 있지도 않았어.
근데 그 여자를 보자마자 갑자기 온몸이 다 떨리는 게
너무 무섭더라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도망쳐온 거야."
"그래? 일단 너 진정 좀 해야겠다. B도 곧 온다고 했어."
그때 마침 B가 카페로 들어왔고, 카운터 쪽으로
다가가자 파트타임 직원이 B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자리로 가져다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주문을 마치고 우리에게 다가온 B는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 좀 괜찮냐?"
그렇게 묻는 B는 A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야, 야··· 이거 뭐냐···? 내가 이상한 거야? 아니면
그, 그 여자가 진짜 귀신이었던 거야?"
A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말까지 더듬었고, 그때 카페 직원이
주문한 음료를 들고 자리로 다가왔다.
"어? 두 분, 화해하셨어요? 저번에 카페에서 싸우는 거 봤는데···."
"아~, 그때 싸운 건 얘네 둘이 아니라 얘랑 어떤 여자분이었어요.
하하, 그때는 죄송했어요."
"여자분이요? 그때 두 분이 싸운 거 맞는데···.
이분이 뭐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그때 여자는 없었는데···?"
그러자 B가 씨익 웃으며 A에게 말했다.
"하핫··· 것 봐라. 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