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친구들에게 ‘사실 내가 이상한 걸 좀 보는 사람이다’ 하고 말했을 때 나오는 반응은 대충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래서 그게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두 번째는 무서운 이야기 해 달라면서 신기해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 반응은 또다시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실제로 그런 것을 보는 아주 희귀한 경우이고, 이는 그동안 살면서 딱 한 번 봤다.
다른 하나는 실은 자신도 그런 게 보인다며 공감대를 얻으려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은 평소 무서운 것을 워낙 좋아하고 신기해하며 그런 것을 조금 동경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실 나도 그런 게 보인다며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게 좋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와 같은 부류를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얘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남의 아픔을 재미로 건드리는 것은 굉장히 실례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것을 보는 데다 몸까지 약해서 늘 조용한 편이었는데 초등학생 때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서 내가 좀 이상한 아이라는 식의 소문이 퍼진 적이 있었다.
애들이 눈을 반짝이며 ‘내 뒤에도 귀신이 있냐’, ‘지금 보이는 귀신이 뭐냐’ 이런 식으로 유치하게 물어보고 달려드는 바람에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상황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하필 그때 세 번째 부류의 친구가 내 앞에 나타났다.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부류의 친구 말이다.
사실 나는 그런 것을 보는 것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사람은 자신이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나를 거짓말쟁이 혹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니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귀신을 믿지는 않는다.
물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존재는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흔히 아는 유령이나 귀신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이미지의 존재들 또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로 말미암아 언어와 문화, 사회가 만들어졌고, 이 세계가 존재한다지만 사람이 없다고 해서 어떤 개념이나 정의 자체도 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잖은가.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내 앞에 나타났던 그 친구를 A라고 하겠다.
A는 명랑하고 밝은 성격의 평범한 여중생이었는데 공포와 오컬트에 좀 심하게 열광하는 친구였다.
평소 겁이 많고 예민한 사람은 가위에 잘 눌린다거나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기에 나도 그런 게 보인다느니,
나도 너와 같은 부류라는 말을 할 수는 있는데 A는 겁이 많거나 예민하지도 않았던 데다가 나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A는 남들과는 다른 이 모습이 얼마나 끔찍하고 괴로운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참 가벼운 친구다’ 하는 생각은 했지만 워낙 활발한 아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수련회 비슷한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깊은 산골에 있는 폐교에서 캠핑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곳에 가면 으레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이야기를 하던 친구들이 갑자기 진실 게임을 하자며 나를 붙잡았다.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식은땀만 줄줄 흘리며 굳어 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친구들 뒤로 몰려든 그것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보려는 아이들의 호기심과 욕망이 그들을 불렀던 것이다.
재미에서 비롯된 진심이 아닌 욕망과 욕심이 그들을 부른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진짜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A가 불쑥 ‘나도 그런 걸 많이 봤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 이런 식의 말을 하면서 자신이 겪었다고 하는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위에 눌렸을 때 자기 몸 위에 어떤 시커먼 여자가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였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A의 눈빛은 몹시 반짝이고 있었다.
아주 신나고 재밌는 듯한 얼굴이었는데 A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우리 너무 힘들지 않니?’ 이런 식의 말을 하는 것이다.
나에게 공감대를 얻어서 친구들에게 더욱 신뢰를 주려는 듯했는데 A가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A에게는 단순한 재미와 흥미였을지 몰라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당장 눈앞에 닥친 두려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평범한 사람이 그들을 간절히 원했을 때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많이들 알고 있는 분신사바나 혼숨 같은 강령술 있잖은가. 그런 것은 정말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시도한다고 해서 진짜 그들이 올 리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잔재가 남는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던 나는 결국 ‘제발 귀신을 부르거나 찾지 마라.
호기심을 갖는 것 자체도 그것들을 부를 수 있다.’ 하고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친구들이 그것들과 엮여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내가 그런 것을 본다는 걸 너희들이 믿든, 믿지 않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너희들의 그 섣부른 행동들 때문에
그것들은 너희의 몸과 마음이 약해진 틈을 타서 언제라도 나타날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너희들의 단순한 욕망과 호기심으로 부른 그 많은 것들이 지금처럼 너희들 뒤에 달라붙어
너희를 노려보고 있을지 모른다’며 쐐기를 박아 버렸다.
그러자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더니 몇몇은 비명까지 질러댔다.
다행히 친구들 중 한 명이 ‘너 이야기 진짜 무섭게 잘 한다’며 웃어 줘서 그렇게 분위기가 풀렸고,
그 이후로 나를 괴롭히던 소문이나 친구들의 갑작스러운 행동들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에 들은 A의 근황 때문이다.
A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공포와 오컬트에 열광하며 그런 행동들을 반복했고,
그러다가 대학에 가면서 건강이 나빠졌다고 한다.
예전에 동창회에서 우연히 A를 만난 적이 있는데 서로 살짝 어색한 상황에서 A가 대뜸 수련회 이야기를 꺼냈다.
A는 ‘그때는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쑥스럽게 웃었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는 척 애써 미소를 지으며 A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A가 불쑥 말했다.
심하게 아팠을 때 내가 말했던 그것의 시선을 느꼈다고. A는 병원에 있는 내내 심한 가위눌림에 시달렸는데
그때마다 짧은 머리에 귀 한쪽이 다 찢어진 무서운 여자가 노려보는 시선을 느꼈다고 했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짧은 머리에 귀 한쪽이 다 찢어진 그 무서운 여자,
온통 새카만 행색의 그 여자.
그거 실은 내가 그때 수련회에서 봤던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