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같은 반에 K라는 여자애가 있었다.
소심한 나와는 정반대인 성격으로, 정의감이 넘쳤고 조금 오지랖이 넓은 면도 있었다.
반 친구라 해도 그렇게 친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 날, 둘이서 복도를 걷다가 저쪽에서 걸어오시던 담임 선생님이랑 K가 부딪혔다.
"죄송해요, 선생님."
"아니야, 괜찮아. 내가 미안하다."
그때 부딪히면서 선생님이 늘 지니고 다니시던 커다란 부적 봉투가 떨어졌었는데
끈이 느슨해졌는지 안이 살짝 들여다보였다. 비닐로 된 지퍼백 안에 하얀 고체와 가루 같은 게 들어 있었다.
"그게 뭐예요?"
"아, 이거···. 옛날에 키우던 고양이 유골이야. 성불했으면 해서···."
K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선생님은 가 버리셨다.
그래···. 죽은 사람은 누구나 성불을 하면 좋겠지.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하지만 그게 안 되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음악실 귀신 이야기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옛날에 이 학교에 피아노를 좋아하던 한 여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연주 실력이 상당히 좋아 장래가 유망했고,
사랑하던 연인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건널목에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그 여학생이 지금도 음악실에서 아주 슬픈 곡을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K가 귀신을 보러 가자고 했다.
내가 거절 못 하는 성격이라는 걸 파악한 것 같았다.
선생님의 고양이 이야기를 들은 뒤로 원래 성격이 그렇기도 했지만 K는 사후 세계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 보였다.
집을 나온 건 한밤중이었다.
우리 둘은 학교에 숨어 들어가 음악실로 향했는데 정말로 피아노 멜로디가 들려오는 것이다.
소리를 따라 음악실 문을 열자 교복 차림의 여자아이가 피아노 앞에 있는 것이 보였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예쁜 아이이긴 했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피아노 소리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긴 했지만 엄청 서투른 솜씨라고 할까, 삐걱거리고 음이 고르지 못한 게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소문이 잘못된 거였나 생각하며 K를 보자 그 녀석이 그 귀신 곁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무섭긴 했지만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게 더 무서울 것 같아서 나도 뒤따랐다.
두려움에 떨면서 그 여학생 귀신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검은 생머리를 어깨 아래까지 길게 늘어뜨린 참 예쁜 아이였다.
그렇게 홀린 듯이 보고 있다가 문득 ‘그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 여학생은 양손에 손가락이 없었다. 손가락이 잘린 채로 손바닥으로만 건반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K가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K를 보자 시선을 내 등 뒤쪽으로 향한 채 얼어붙어 있었다. K의 시선을 따라 그쪽을 보고는 나도 얼어붙고 말았다.
그곳에는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서 있었다.
그 역시 산 사람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슬퍼 보이는 눈으로 그 여학생을 보고 있었다.
그 남학생의 오른쪽 눈 밑에 눈물방울 같은 점이 있어서 정말로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오른손에 피가 묻은 뭔가 잘게 잘린 듯한 것을 들고 있었고,
왼손에는 열 개 정도의 하얗고 가느다란 것을 소중한 듯이 들고 있었다.
손가락이었다. 틀림없이 저 여학생의···. 그것을 깨닫고 나자
급속도로 몰아치는 공포감에 우리는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음악실에서 뛰쳐나왔다.
숨어들어 왔던 뒷문을 향해 달리며 K가 빠르게 말했다.
"그거··· 남자애 말이야··! 그 사람···!!"
"몰라!! 뭐가 뭔지 모르겠어!!!"
뒷문을 빠져나와 학교에서 멀어진 후 그 귀신들을 다시 떠올려 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둘이 무관해 보이진 않았다.
"K. 그 남학생 말이야, 여학생 귀신의 남자 친구가 아니었을까?"
"뭐? 그럴 리가 있겠어? 그 남자애,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잖아. 여자 친구한테 그런 짓을 하겠어?"
허리를 굽혀 무릎에 손을 짚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가 대답했다.
"그 여학생한테서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잖아.
그걸 자기 것으로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됐을 만큼 그 남학생의 유령은 손가락에 대한 자애로 가득 차 보였었다.
나는 왠지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몰라···. 모르겠어···. 난 이해가 안 돼! 그런 생각을 하는 너도 그렇고···."
피아노를 칠 손가락을 잃고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는 절망한 소녀가 자살을 한 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 남학생이 죽인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손가락을 손에 넣고는 쓸모 없어진 여학생을 자살로 꾸미고 그 남학생이·········· 모르겠다.
커져만 가는 망상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K와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헤어졌다.
그 녀석이 자기 집과는 다른 방향으로 갔다는 건 알았지만···.
그날 이후로 K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가 흘러나온 건지 K가 음악실 귀신에게 홀려 자살을 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떠돌았다.
만약 K가 이미 이 세상에 없다고 해도 그건 아마 그 여학생 귀신과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마도 그날 K는 자기 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 남학생의 인상착의가 우리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얼굴을 그렇게 슬쩍 한번 본 것만으로도 그게 누군지 확신할 수 있었던 그 ‘누군가’에게 K가 찾아갔을 것이다.
그 사람은 지금도 살아 있긴 하지만 아마 옛날에 죽은 그 소녀를 잊지 못해서
생긴 집착 등의 생각이 생령 같은 것이 되어 아직도 음악실에 남아 그 소녀를 응시하고 있는 것일 터.
K는 아마 그 ‘누군가’에게 그것을 캐물었던 것이다.
"그거, 정말 고양이 뼈인가요?"
라고·····. 그 후로 K가 그 누군가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다.
K가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언제나와 똑같은 교실의 아침 조회 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교탁 앞에서 인사를 했다.
선생님의 오른쪽 눈 아래의 점이 눈물 모양이라서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